[Vol.12] 빅테크 기업 규제의 방향성
빅테크 기업 규제의 방향성
최호섭(work.hs.choi@gmail.com)
IT칼럼니스트
빅테크 규제는 어디로 가고 있나. 기업도, 소비자도 웃을 수 있어야
지난 한 해 논란이 됐던 ICT 관련 이슈를 꼽자면 ‘구글 갑질 방지법’, ‘넷플릭스 무임승차 방지법’, ‘n번 방 방지법’ 등의 이름으로 대표되는 규제들이 떠오른다. 각자 이유나 목적은 다르지만 이 정책들은 특정 서비스에 대한 규제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대체로 그 대상이 되는 기업이나 서비스도 정해져 있다.
물론 실제로 해당 법안에 기업의 이름이 직접 쓰여서 통과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법들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의 이름으로 입법 절차가 이뤄진다. 하지만 이 이름만으로는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해당 법안의 취지나 목적을 잘 드러내기 위해 별칭을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기업과 관련된 정책들은 해당 기업의 이름을 따서 직관적으로 법안의 방향성을 설명되곤 한다. ‘구글의 마켓 플랫폼 갑질을 막겠다’, 혹은 ‘넷플릭스가 인터넷 망을 무임 승차하지 못하게 규제한다’라는 내용이 이름에 담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 규제들이 적절하게, 또 모두가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조금 다른 문제다. 인터넷은 세상을 더 단순하게 연결하고 있지만, 그 영향력은 더 복잡하게 엮이고 있다. 각 국가의 문화, 환경, 규제와 복잡하게 얽히면서 이전의 가치관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규제의 목적과 방향이 옳은지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ICT 규제의 역할과 필요성
ICT와 관련된 규제의 적지 않은 부분이 해외 기업들과 관련되어 있다. 여전히 ICT와 관련된 기술들의 중심은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연결되어 있고, 이 기업들이 내놓는 제품과 서비스들은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내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국내의 다른 서비스들과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고, 때로 독점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한 부작용도 일어난다.
이 때문에 모든 분야에서 법과 제도를 통한 적절한 규제는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특정 사안이 문제를 일으키면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고 하더라도 해당 기업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하는 부분이다. 국내 기업 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국가 시스템은 사회적 합의를 거친 규제로 우리 환경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가 이뤄지도록 할 권한과 의무가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국내 특정 산업의 보호를 목적으로 규제가 이뤄지는 부분도 없지 않다. 우리나라 경제 구조의 중심이 되는 제품과 서비스들이 적지 않고, 지금도 꾸준히 늘어가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국내에서 경쟁력을 갖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이뤄지도록 국가 시스템이 돕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자유무역을 이야기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보호무역을 적절히 섞어서 정책을 세운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내어줄 것은 내어준다는 계산인 셈이다. 각 국가별로 꼭 지켜내야 하는 것들, 이는 산업이나 경제구조 뿐 아니라 문화와 정서, 통념까지 연결될 수 있다.
과거에는 무역 규제로 대부분의 것들이 해결되었다. 농산물부터 일본 음악은 유통도, 방송도 안 됐다. 하지만 인터넷은 국경을 넘어 더 많은 것들을 전 세계로 유통하고 있다. 한창 세계를 달구고 있는 K-팝도, 또 K-드라마도 그 배경에는 실시간으로 콘텐츠를 실어 나르는 인터넷이 있다.
인터넷 플랫폼 비즈니스는 점차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오징어 게임’에 열광하고, 유튜브를 통해 뉴욕에서 열리는 쇼케이스를 전 세계가 동시에 시청한다.
규제의 방향성, 특정 기업보다 시장 전체로 시야 넓혀야
최근 IT 관련 규제들에서 부쩍 눈에 띄는 것은 특정 기업의 이름이다. 구글 갑질 방지법, 넷플릭스 무임승차 방지법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물론 이 법안에 실제로 기업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 무임승차 방지법은 넷플릭스가 국내에 데이터센터를 따로 마련하지 않은 탓에 통신망 사업자들은 해당 데이터를 일본을 비롯한 해외에서 끌어 와야 하고, 이는 곧 국가간 망 이용에 대한 부담으로 이어졌다.
통신사들의 해법은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LG유플러스는 일찍부터 넷플릭스와 제휴를 통해서 국내에 캐시 서버를 두는 방법을 택했다. KT는 상대적으로 용량이 넉넉한 해외 접속망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했다. 하지만 SK브로드밴드는 해외 접속망의 부담을 함께 나누는 방법을 택했다. 넷플릭스 때문에 해외망의 부담이 늘었으니 망 이용과 확장 등에 드는 비용 명목으로 넷플릭스가 망 이용 대가를 따로 치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넷플릭스는 오픈커넥트 기반의 캐시 서버를 계속 제안하면서 망 사용료를 낼 수 없다는 입장을 지켰고, 둘 사이의 갈등은 몇 년을 이어왔다. 결국 이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해외 기업이 국내 기업들이 깔아 놓은 인터넷 망을 무료로 쓰고 있다’는 문제가 국회로 넘어갔다.
이는 구글을 비롯한 해외 인터넷 서비스들과 오랫동안 얽혀 있던 문제이기도 하다. 이 기업들이 아무 제한 없이 국내에서 간단히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쉽게 돈을 벌어간다는 것이다. 인터넷 망 사용료는 국내 인터넷 기업들은 대부분 지불하고 있는 별도의 요금인데, 해외 기업들이 이를 빗겨가고 있다는 ‘역차별’ 논란으로도 이어진다. 하지만 이는 인터넷을 바탕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들의 기본 환경과 관련이 있는 문제다. 인터넷의 망 중립성을 비롯한 데이터 패킷 전송 역무라는 인터넷 망 사업자의 책임과도 연결되는 다소 복잡한 문제다.
조금 더 단순하게 보자면 이 상황은 인터넷 초기부터 당연하게 이어져 온 망 사용료 제도가 더욱 글로벌로 확장된 인터넷 환경과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이를 다시 가다듬는 과정이 필요한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조금 더 폭넓게 보자면 인터넷 망 사업자와 인터넷 서비스 제공 업체들 사이의 균형을 잡고, 해외 기업들이 일정한 기준을 바탕으로 국내 기업이 억울하다고 느끼지 않을 적절한 해법이 필요한 문제였다. 네이버가 1년에 700억원씩 망 이용료를 낸다는 자료도 공개됐는데, 국내 기업도 이에 대해 통신사와 적절한 답을 찾아낼 필요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법안의 이름이 지어지는 과정부터 진행 절차는 이 법의 목적이 단순히 넷플릭스를 규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다는 뒷맛이 남아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의 결제 수수료가 부당하고, 외부의 자체 결제 방법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을 ‘갑질’로 규정한 전기통신사업법 제50조 개정안도 다르지 않다.
이 법은 구글의 마켓에서 앱이나 콘텐츠를 판매하면 30%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부분에서 출발했다. 구글 뿐 아니라 애플 등 대부분의 앱 마켓 수수료는 30%, 즉 콘텐츠 공급자와 유통사 사이의 7:3 비율로 정해져 있다. 애플이 앱스토어를 내놓으면서부터 이어져 오던 암묵적인 규칙이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구글 플레이스토어를 벗어난 외부 결제가 적지 않게 이뤄졌는데, 구글이 이를 차단하겠다고 밝히면서 ‘갑질’ 논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30%의 수수료부터 결제 방법까지 도마에 올랐고, 결국 구글은 연간 매출 100만 달러, 우리돈으로 약 11억원까지는 수수료를 절반인 15%로 낮추는 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국회는 양보 없이 결제 수단의 강제도 법으로 막아냈다. 적어도 구글 플레이스토어는 이제 앱 내에서 구글 플레이스토어의 결제 방법을 쓰지 않아도 된다.
이 역시 단순히 결제 방법을 강제하는 갑질이라고 단순화해서 보기는 어렵다. 구글플레이를 비롯한 앱 마켓은 콘텐츠 유통 플랫폼이다. 앱과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유통해주는 서비스다. 막대한 용량의 데이터 파일을 전송하고, 보안, 마케팅, 홍보, 기술지원 등 다양한 서비스가 뒤따르게 된다. 그에 대한 수수료가 플랫폼의 등장 당시에는 30% 정도로 설계된 것이다. 구글이나 애플이 마켓을 열던 시기만 해도 절반이 넘는 수수료를 내는 유통 시장도 적지 않았기 떄문에 30% 수수료는 만족도가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기존의 분산된 유통 구조보다 일관된 플랫폼에서 전 세계 이용자들에게 같은 경험을 주는 이 시장에 만족을 느끼고, 수수료에 대해서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경향도 있었다.
하지만 시장이 커지고, 모바일 관련 콘텐츠 매출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일관된 수수료에 대해 기업들로서는 부당하다고 느낄 만한 부분도 있다. 큰 수수료에 대한 목소리는 에픽게임즈를 비롯해 많은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내고 있고, 마찰과 분쟁, 그리고 협의가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에 대해 특정 기업이 마켓을 독점한다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국내에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대응하는 원스토어가 있고, 국내의 많은 게임 기업들이 수수료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기도 하다. 구글의 마켓을 견제하기 위해 여러 규제들이 한번에 쏟아졌고, 그 중에서 수수료 인하, 외부 결제 허용, 모든 앱은 국내에 서비스되는 모든 스토어에 등록 같은 문제들이 법으로 고민됐다.
그러자 가장 큰 수혜자로 꼽히던 원스토어가 구글을 비롯한 스토어의 규제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구글의 플랫폼 규제는 결국 국내 다른 기업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수료를 낮추고, 외부 결제를 푸는 것은 구글만이 아니라 원스토어에게도 똑같은 조건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수익 구조를 바꾸면 플랫폼의 가장 중요한 지속 가능성에 대한 확신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 역시 조금 더 치밀하게 시장 구조와 현실성을 반영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자칫 이 법안들의 기본이 구글만 보고 만들었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커지는 빅테크 규제, ‘해외기업이니까…’보다 ‘국내 이용자 위해서’ 되어야
빅테크 규제에 대한 목소리는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다. 이미 구글세로 불리는 글로벌 기업들의 형평성 있는 과세는 오랫동안 많은 국가들이 고민해 왔고, 조세 회피처나 규제를 넘나드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안들이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유럽연합의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 같은 규제 역시 이 빅테크 기업들이 전 세계의 인구를 대상으로 개인정보를 다루는 방법과 가이드라인을 상세하게 정해두면서 큰 파장이 일었다. 하지만 이 규제들을 통해서 온라인의 조세 국경, 그리고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기준점이 생겨났고, 큰 틀에서 빅테크 기업들도 흐름을 따라가는 중이다.
그럴수록 온라인은 더 많은 다양성과 예측불허의 신기술을 통해 복잡성을 더해가게 마련이다. 앱 마켓 규제 역시 다음 논란 거리로 도마에 올라 와 있던 주제다. 우리나라의 사례를 바탕으로 다른 나라들도 플랫폼 기업들의 규제를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규제의 방법은 조금 더 신중하고, 큰 그림이 필요해 보인다. 넷플릭스 무임승차 방지법은 모호한 규제로 기업간의 갈등을 씻어내기는 커녕 여전히 이어지는 논란으로 남아 있다. 해당 법의 무기력함도 지적된다. 구글의 수수료 논란도 기업들이 모두가 반기기만 하는 주제가 아니다. n번방 방지법의 핵심 법안인 정보통신망법 및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역시 그 중심에는 텔레그램이라는 규제의 목적지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해당 법으로 텔레그램을 뒤져볼 수는 없었다. 대신 국내 메신저 기업들의 검열 논란이 튀어 나왔다.
인터넷의 규제는 그 어떤 규제보다 어려울 수밖에 없다. 기술적으로, 때로는 법적으로 근거를 마련하기 어려운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본적인 정책 기조를 세우고, 그에 맞춰 더 치밀하고 정교하게 법안이 만들어지고, 엄격하게 시행되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규제가 그 안에는 ‘해외 기업이 국내에서 쉽게 큰 돈을 벌어간다’는 감정적인 요소가 비치는 부분도 있다.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우리 환경에 더 맞는 서비스들을 키우기 위한 적절한 규제는 필요하지만 특정 기업에 대한 차별이 눈에 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갈등이 무역이나 통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 기업들 역시 시장이 국내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로벌 플랫폼을 타고 세계 시장을 만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됐고, 우리나라 기업들이 글로벌로 손꼽히는 플랫폼 사업을 하기도 한다.
자칫 국내의 규제들이 기업들에게 해외에서 차별을 만들어낼 여지가 될 수도 있고, 규제 안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의 경험을 놓칠 가능성도 있다. 국내의 플랫폼 기업들도 글로벌 기업들에 뒤지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국내 시장에서는 이용자들의 입맛을 더 잘 맞출 수 있다는 것이 늘 경쟁력으로 언급되곤 한다. 경쟁력과 적절한 규제가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이 고민되어야 한다.
그 사이에 이용자들은 가려지는 부분도 있다. 위치 정보법을 비롯해서 적지 않은 규제들이 해외 기업에는 진입장벽으로, 국내 기업에는 역차별로 이야기된다. 그 사이에 이용자들은 해당 서비스에서 소외되곤 한다. 국가가 기업을 규제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은 이용자 보호에 있어야 한다. 우리도 전 세계 사람들과 같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시장보다 이용자가 중심에 놓인다는 기본 원칙이 규제 전반에 놓여야 할 것이다.